1989년 어느날 안성기씨가 아들 돌이라며 영화인 몇 명을 집으로 초대했다. 저녁상을 물리고 한담을 즐기고 있는데 배우 박중훈이 슬며시 다가왔다. "사장님, 저 좀 뵙죠"라면서 옆방으로 가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며 따라갔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불쑥 바지를 내렸다. 흠칫 놀라 올려다 보니 "여길 한번 만져 보세요"라면서 내 손을 허벅지로 가져가는 거였다. 근육이 잡혀 차돌처럼 단단했다.
"사장님, 저 몸 만들고 있습니다. 김두한 역을 저한테 맡겨주세요." 임권택 감독이 '장군의 아들'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돈 모양이었다. "배우야 감독이 결정하지, 내가 무슨 힘이 있나…"라고 말했지만 배역을 따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좋게 보였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강수연)을 탔던 임 감독은 차기작을 고르느라 몹시 고심하고 있었다. '만다라' '길소뜸' '씨받이' 등으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자 부담을 많이 갖는 듯했다.
어느 날 사무실을 찾아왔는데 얼굴이 초췌해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러다 병나겠수다. 여유를 가지고 고르시오" 했더니 "그러게 말입니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마침 내 책상에는 읽다 만 홍성유 원작의 '장군의 아들'이 놓여 있었다. '레이디 경향'의 김화라는 기자가 "재미있다"며 "(영화화를) 한번 검토해 보라"고 놓고 간 것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처음엔 김두한 이야기에 별 매력을 못 느끼고 있었다. 나는 종로.명동 거리에서 그와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다. 남자답고, 풍운아로서의 면모도 갖췄지만 영화화할 만큼 '우리의 영웅'은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나는 우리 사회 분위기에 매우 실망하고 있었다. 5공 청문회가 한창이던 때였다. 소위 5공 주역들이 줄줄이 국회에 소환돼 80년 5.18 광주항쟁 때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추궁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 변명과 발뺌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군인다움은 고사하고 사내로서의 배포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또 강남에서 불고 있던 '오렌지족' 바람도 못마땅했다. 남자애들이 꽁지 머리를 땋고 여자처럼 치장하는 꼴을 보자니 심사가 뒤틀렸다.
"어떻게 된 게 사내다운 사내를 찾아볼 수가 없다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 임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근사한 액션 영화 한 편 나오면 잘 될 것 같은데…."
나는 어느새 임 감독을 '펌프질'하고 있었다. "액션 하면 임권택 말고 누가 있수? 이 책 한번 보시우"하면서 소설 '장군의 아들'을 내밀었다.
"지금 와서 내가 액션이 될까…." 임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갔다.
뒷날 들으니 당시 임 감독은 액션을 해보라는 내 말에 서운했다고 한다. 이제야 제대로 '자기 영화'를 만들어 볼 기회를 잡아 애쓰고 있는데 '돈벌이 영화'를 만들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소설을 재미있게 봤는지 며칠 뒤 시나리오 작업을 하자고 연락해왔다.
문제는 배우였다. 사실 나는 김두한 역에는 박중훈과 최재성 둘 중 하나를, 하야시 역에는 정보석을 점찍어놓고 있었다. 임 감독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좀처럼 낙점을 못하고 있었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
▶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 역을 맡은 배우 박상민. |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며 따라갔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불쑥 바지를 내렸다. 흠칫 놀라 올려다 보니 "여길 한번 만져 보세요"라면서 내 손을 허벅지로 가져가는 거였다. 근육이 잡혀 차돌처럼 단단했다.
"사장님, 저 몸 만들고 있습니다. 김두한 역을 저한테 맡겨주세요." 임권택 감독이 '장군의 아들'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돈 모양이었다. "배우야 감독이 결정하지, 내가 무슨 힘이 있나…"라고 말했지만 배역을 따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좋게 보였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강수연)을 탔던 임 감독은 차기작을 고르느라 몹시 고심하고 있었다. '만다라' '길소뜸' '씨받이' 등으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자 부담을 많이 갖는 듯했다.
마침 내 책상에는 읽다 만 홍성유 원작의 '장군의 아들'이 놓여 있었다. '레이디 경향'의 김화라는 기자가 "재미있다"며 "(영화화를) 한번 검토해 보라"고 놓고 간 것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처음엔 김두한 이야기에 별 매력을 못 느끼고 있었다. 나는 종로.명동 거리에서 그와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다. 남자답고, 풍운아로서의 면모도 갖췄지만 영화화할 만큼 '우리의 영웅'은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나는 우리 사회 분위기에 매우 실망하고 있었다. 5공 청문회가 한창이던 때였다. 소위 5공 주역들이 줄줄이 국회에 소환돼 80년 5.18 광주항쟁 때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추궁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 변명과 발뺌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군인다움은 고사하고 사내로서의 배포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또 강남에서 불고 있던 '오렌지족' 바람도 못마땅했다. 남자애들이 꽁지 머리를 땋고 여자처럼 치장하는 꼴을 보자니 심사가 뒤틀렸다.
"어떻게 된 게 사내다운 사내를 찾아볼 수가 없다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 임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근사한 액션 영화 한 편 나오면 잘 될 것 같은데…."
나는 어느새 임 감독을 '펌프질'하고 있었다. "액션 하면 임권택 말고 누가 있수? 이 책 한번 보시우"하면서 소설 '장군의 아들'을 내밀었다.
"지금 와서 내가 액션이 될까…." 임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갔다.
뒷날 들으니 당시 임 감독은 액션을 해보라는 내 말에 서운했다고 한다. 이제야 제대로 '자기 영화'를 만들어 볼 기회를 잡아 애쓰고 있는데 '돈벌이 영화'를 만들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소설을 재미있게 봤는지 며칠 뒤 시나리오 작업을 하자고 연락해왔다.
문제는 배우였다. 사실 나는 김두한 역에는 박중훈과 최재성 둘 중 하나를, 하야시 역에는 정보석을 점찍어놓고 있었다. 임 감독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지만 좀처럼 낙점을 못하고 있었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