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

[스크랩] 용의 눈물 이야기와 21세기 한국경영

밤하늘을 날아서 2008. 4. 28. 12:53
자의누리 칼럼 (2004년)

왜 우리 국호는 고조선, 조선이었나, 그리고 자의누리는 무엇인가?
- 용의 눈물 이야기와 21세기 한국경영 -



1. ‘용의 눈물’의 주인공

   1997년부터 1년간 전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TV 사극이 ‘ 용의 눈물 ’을 기억하는가? 우리나라 TV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160회의 대하 드라마, 이후 사극의 전성시대를 열며 1998년도에 한국방송대작 작품부분 대상을 차지한 드라마였다. 많은 이들이 손에 땀을 쥐며, 조선 개국의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속에는 인물과 정치, 그리고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용의 눈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태조 이성계일까? 아니면 태종 이방원일까? 혹자는 주인공이 유동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답은 원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찾을 수 있다. 용의 눈물의 원작은 월탄 박종화(朴鍾和, 1901-1981)의 소설 ‘ 세종대왕 ’이다. ‘ 용의 눈물 '의 김재형 PD는 1970년대 중반 조선일보에 연재되기 시작한 ' 세종대왕 '(박종화 作)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읽으며 이 작품을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는 발원을 했다. 그리고 1996년말 정년퇴임을 하고 난 후 계약직으로 제작하는 첫작품으로 ' 용의 눈물 ’을 선택했다고 한다.
(참고자료: http://anitya.buddhism.org/world/world2.html)


   용의 눈물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아야 하는 인물은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이라고 생각된다. 조선을 개국할 당시 정치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조선의 하드웨어를 만들어낸 사람은 태조 이성계였지만,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성계의 곁에는 정도전이라는 걸출한 석학이 있어 조선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정도전은 고려 말에는 전제(田制)의 개혁안을 만들어서 백성들을 열광케 하였고, 새 왕조가 창업된 다음에는 바로 「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 」을 완성하여 조선 개국의 이념과 강령을 정리하였다.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은 태조 3년인 1394년에 찬진(撰進)되었으며, 상하 2권으로 나누어 동양의 전통적 관제인 6전(六典)에 따라 조선 왕조의 모든 관제의 대강을 서술한 것이다. 먼저 국가 형성의 기본을 논하여 조선왕조의 합당성을 설명하고 왕업의 지침을 거기에 적었으며, 6전 앞에는 치국(治國)의 대요로서 정보위(正寶位)ㆍ국호(國號)ㆍ정국본(定國本)ㆍ세계(世系)ㆍ교서(敎書)를 기술하여 천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인(仁)으로써 왕위를 지켜나가야 할 것, 국호를 ' 조선 '으로 정한 것이 기자 조선의 계승이라는 점, 왕위 세습은 장자(長者)나 현자(賢者)로서 해야 한다는 것, 교서는 문신의 힘을 빌어 높은 수준으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점을 각각 제시하고 있다.
(삼봉집, http://myhome.netsgo.com/snewworld/hisjdj040201.htm에서 인용
육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치전(治典)에서는 군신(君臣)의 직능과 관리 선발 방법을 항목별로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특히 재상(宰相)이 정치ㆍ경제ㆍ군사 등 모든 통치의 실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관리 선발이 고시(考試)제도에 의거하여 능력 본위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부전(賦典)에서는 국가의 수입과 지출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야 한다는 것과, 국가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는 군현제도ㆍ호적제도가 정비되어야 하고, 농상(農桑)이 장려되어야 한다는 것, 국가 수입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토지 소유를 균등하게 하고 병작반수를 금해야 한다는 것과, 부세(賦稅)를 가볍게 할 것을 강조했다. 국가의 지출 항목으로서는 상공(上供)〔왕실경비〕ㆍ국용(國用)〔공공행사비〕ㆍ군자(軍資)ㆍ의창(義倉)ㆍ전약국(典藥局)을 들고, 되도록 지출을 절약하여 예비 경비를 많이 비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자면, 부전(賦典)의 기본원칙은 민생을 균등하게 안정시키면서 국가 수입을 증대시켜 국리(國利)ㆍ민복(民福)의 조화를 꾀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전(禮典)에서는 조회ㆍ제사ㆍ교육ㆍ외교, 기타 관혼 상제 등에 관련된 의례의 원칙을 제시한다. 여기서 예(禮)는 질서로서 정의되고, 그 질서는 상하 차등을 전제로 하되 상하가 서로 화합하는 조화관계를 중시한다. 특히 교육과 관련하여 서민 이상 신분의 교육 참여의 기회를 넓히고 고시제도의 강화로써 능력본위의 인재등용 제도를 확립할 것이 강조된다. 그리고 언로(言路)를 개방하여 상하의 통성(通性)이 원만해질 것과, 사대외교(事大外交)의 중요성이 지적된다. 관혼 상제의 의례는 종전의 토속적이며 불교적인 의례를 버리고 유교적인 의례로써 대치할 것을 제시하면서 특히 물질적인 낭비의 폐단을 경계하고 있다.
정전(政典)은 병전(兵典)에 해당한다. 병전을 정전이라 한 것은 병제가 기본적으로는 사람을 바르게 하는 정인(正人)의 도덕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입장에서이다. 다시 말하자면 병제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병농일치(兵農一致)라든가, 중앙군과 지방군의 이원적 체제라든가, 무기와 훈련의 개량ㆍ개선이라든가, 차경차전(且耕且戰)의 둔전(屯田) 제도의 중요성 등이 제시되면서, 동시에 병제를 운영하는 이념적인 기초로서 백성과 군사를 아끼고 나라를 바르게 인도한다는 대원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전(憲典)은 형전(刑典)과 일치한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인(仁)을 바탕으로 하는 도덕 정치, 즉 인정(仁政)과 덕치(德治)가 중요한 것이지만, 도덕만으로는 불가능한 때가 있으므로 도덕정치를 보조하는 수단으로서 형벌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형벌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보조수단이지 그것이 근본이 되어서는 안되며, 형벌과 법은 어디까지나 예방수단으로서 이용되는 것이 이상적이라 한다.
끝으로 공전(工典)에서는 국가의 각종 물품제조나 토목공사 등을 운영ㆍ집행하는 원칙으로서 사치를 금할 것과 재정 낭비를 경계할 것, 그리고 백성의 노력을 지나치게 소모하여 피로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강조된다.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에 제시된 통치규범(統治規範)은 한마디로 《주례》(周禮)의 육전체제(六典體制)를 모델로 하되, 여기에 중국 역대(歷代)의 제도(制度)를 절충하고, 그것을 다시 조선(朝鮮)의 현실(現實)에 맞게 조정한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석학 정도전의 정치 철학의 집대성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2. 경복궁과 근정전의 의미

1) 경복궁

   뿐만 아니라, 정도전은 이성계의 명을 받아 새로 준공된 대궐의 이름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전각과 문루의 이름을 지어 올렸는데, 그 문장의 도도함과 박식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먼저 경복궁(景福宮)이란 이름은 태조 4년인 1395년에 정도전이 시경(詩經)의 대아편(大雅篇)에서 인용하여 지은 것이다. 경복궁이라는 이름을 바치면서 정도전은 이렇게 태조에게 말하고 있다.
(신봉승, 「 신봉승의 조선사 나들이 」, 답게, 1996에서 인용)

 “ 신이 살펴보건대, 궁궐이란 것은 임금이 정사를 하는 곳이요, 사방에서 우러러보는 곳입니다. 신민(臣民)들이 다 조성(造成)한 바이므로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성을 보이게 하고, 그 명칭을 아름답게 하여 보고 감동하게 하여야 합니다. 한(漢) 나라와 당(唐)나라 이래로 궁전의 이름은 그대로 하기도 하고 흑은 개혁되기도 하였으나, 그 존엄성을 보이고 감상을 일으키게 한 뜻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중략)

 신 정도전에게 분부하시기를 '궁전의 이름을 지어서 나라와 더불어 한없이 아름답게 하라' 하셨으므로 신이 분부를 받자와 삼가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 시경(詩經) 」 주아(周雅)의'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가 불러서 군자의 만년을, 빛나는 복을 빈다'라는 시를 외우며 새 궁궐의 이름을 경복궁(景福宮)이라고 짓기를 청하오니 전하와 자손께서 만년 태평의 업을 누리시옵고 사방의 신민으로 하여금 길이 보고 느끼게 하옵니다.”



   시경의 원문(原文)은 다음과 같다.

      旣醉以酒 旣飽以德 술로써 취하고 덕으로써 배부르니
      君子萬年 介爾景福 군자가 영원토록 큰 복을 누리리라

   이 싯구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는 ‘ 임금이 내리신 술 나 이미 취했네, 임금의 큰 덕에 배가 이미 부르다네, 원컨대 우리 임 천년 만년 사시고, 큰 복 누리사와 만수무강하옵소서 ’가 가능하며, 이것은 제사가 끝난 뒤 천자(天子)의 복(福)을 비는 노래가 된다.

   이렇게 경복에는 임금의 덕과 만수무강(萬壽無疆), 그리고 큰 복을 기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한자씩 뜯어 봐도 깊이가 있다.
(김의섭,http://members.tripod.lycos.co.kr/kus99/hanja/1-5.htm에서 인용)
경복(景福)에서 경(景)은 日(날 일)과 京(서울 경)의 결어로서 경(京)은 높은 망루(望樓)의 모습에서 나온 글자로 ' 높다 '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망루(京) 밑에 짐(口)을 놓아둔 모습이 高(높을 고)다. 망루는 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대체로 도읍지에 세웠으므로 후에는 ' 서울 '이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景은 ' 해(日)가 높이(京) 떠있는 모습 '에서 빛ㆍ경치ㆍ밝다는 뜻(景觀, 景致, 背景, 風景)이 있으며, 해는 크므로 ' 크다 '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그림 1 > 경복궁 (북궐도) 조감도
( Photo Copyright@Dr. Sirh., 북궐도 조감도, 2002-03-02, 저자 직접 촬영, Sony F 707 )

   복(福)은 귀신(示)의 가호로 재물을 가득 차게 해주는 것(幅)이다. 일례로 수레(車)에 가득 차면 폭 (輻: 바큇살 폭), 집이 재물로 가득 차면 부(富: 부유할 부)가 된다. 그러므로 경복은 '커다란 복', 곧 대복(大福)이 되는 것이다.

   시경(詩經) 대아의 한록(旱麓)에서도 경복의 자구를 발견할 수 있다. 원시는 다음과 같다.

       淸酒旣裁하며 맑은 술 이미 술동이에 가득하고
      牡旣備하니 붉은 황소 갖추어졌으니
      以享以祀하야 이를 흠향시키고 제사 올려
      以介慶福이로다. 큰 복 더 크게 하네.

   여기서도 경복을 ‘큰 복’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홍성욱 역해, 「 시경 」, 고려원, 1997)
여기서는 군자가 제사를 준비하여 정성껏 올리고 이를 통하여 자손에게 복을 내려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도전은 경복궁을 자손 만대로 큰 복을 받기를 바라며 지은 것이다.

2 ) 근정전, 근정문

   또한 현재 국보 223호인 경복궁의 정전이 근정전(勤政殿), 근정문(勤政門)이라는 이름 또한 정도전의 작품이다. 근정전은 조선 초기부터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 등을 거행하던 곳으로, 태조 4년인 1395년에 지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현재의 것은 조선 말기인 고종 4년인 1867년 11월에 흥선대원군이 중건(重建)한 것이다.
(http://chungbuk.ms.kr/social/2jang/kenjung.htm)

   근정전에서 특징적인 것은 어좌 뒤에 놓인 오봉산일월도 병풍이다. 이 병풍앞의 자리가 하늘 아래 최상의 자리임을 뜻한다. 오봉산은(五嶽) 동악(금강산), 서악(묘향산), 남악(지리산), 북악(백두산), 중악(삼각산)으로 한반도 금수강산을 의미하고, 상서로운 파도 뒤에 금빛으로 빛나는 산과 좌우에 음양의 근원이며 우주의 핵심인 해와 달을 그렸다. 천지신명 우주의 도움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자리가 된다.

<그림 2 > 오악일월병 - 근정전

   또 천정에는 황금빛의 용 두마리가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희롱하는 이른바 이룡희주가 있다. 호아금빛의 황룡은 오행설의 방위로 볼 때 중앙을 의미한다. 근정전의 이 황룡은 월대 동서남북에 배치되어 있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등 사방위신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 경복궁의 사대문을 지키고 있는 방위신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오행의 질서를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는 용이다. 용이 승천한다는 것은 지극한 상서로움이요,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함을 의미한다.
(http://user.chollian.net/~polk/k-dragon.html)

<그림 3 > 이룡희주 - 근정전

   「 역경 」 건괘 구오에서는 "비룡재천 이견대인"이라 하였다. 이것은 용이 하늘에 오르니 성인이 보필한다는 뜻이다. 용이 승천한다는 것은 위대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에 등극한다는 의미와 같다. 용이 승천하여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려 만물을 적셔 주듯이 임금이 등극하여 백성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을 용덕이라 한다. 용덕을 갖춘 임금이 이 용처럼 높은 곳에 임하고 있을 때 어진 신하와 백성들이 우러러보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근정전의 풍수이다.

   그런데 근정정의 근정전, 근정문이란 이름 역시 경복궁과 마찬가지로 정도전이 지었는데 실록에 기록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
(경복궁 산책 http://www.k-palace.pe.kr/kyungbokkung/junkak/oj_kun.html에서 인용)

  “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그렇지 않으면 폐하게 됨이 필연의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정사와 같은 큰 일이야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선유(先儒)가 이르기를 아침에는 덕정(德政)하고, 낮에는 방문(訪問)하며, 저녁에는 수회(修會)하며, 밤에는 안신(安身)한다 했으니 이것이 인군(人君)된 자의 힘쓰는 바입니다. 또 이르기를 어진 이를 구하는 데에 부지런하고 어진 이를 쓰는데 빨리한다 했으니, 이와 같은 이름을 청한 것입니다.”




  여기서 "어진 이를 열심히 구하고, 어진 이를 편안히 기용한다" (勤於求賢 逸於任賢)는 의미에서 '근정'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정치의 요체는 인재를 잘 기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 궁궐의 정전에는 '정'(政)자를 넣어 이름을 지어, 창덕궁은 인정전(仁政殿), 창경궁은 명정전(明政殿), 경희궁은 숭정전(崇政殿)이라 이름 짓고 있다. 궁궐의 정문 이름에서 유교정치의 근본이념인 '백성의 교화'를 표방하고, 궁궐의 정전에서는 정치의 요체인 '인재의 등용'을 강조했던 것이다.
(http://www.dongduk.ac.kr/~khs1376/Kbg/Kbg_01.htm)


<그림 4 > 근정문 현판
( Photo Copyright@Dr. Sirh., 근정문 현판, 2002-03-02, 저자 직접 촬영, Sony F 707 )


<그림 5 > 근정전 현판
( Photo Copyright@Dr. Sirh., 근정전 현판, 2002-03-02, 저자 직접 촬영, Sony F 707 )

   즉, 신(臣)이 군(君)으로 하여금 올바른 정치를 펴라는 건의하고, 올바른 정치란 어진 신하들을 많이 등용하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정도전은 정치철학은 신하의 의견을 중시하는 신권주의(臣權主義)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도전이 꿈꾸던 건국 이념은 신권주의로 왕과 다수로 구성된 신하의 힘이 균형을 이루면서 서로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었다.

3 ) 종묘 사직의 창엽문(蒼葉)

   정도전의 학식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가의 사당인 종묘에서 극치에 달한다.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한 사적 제 125호인 종묘에 대해서는 정도전의 저서인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의 하편(下篇), 공전(工典)에서 먼저 언급된다.
(정도전에 관한 인터넷사이트, http://myhome.netsgo.com/snewworld/hisjdj040201-2.htm#종묘宗廟에서 인용)

 “ 제사는 국가의 대사(大事)이다. 그러므로 국가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먼저 종묘(宗廟)를 세우고 다음에 사직(社稷)을 세운다. 그 헌작(獻酌)하는 의식에 관하여는 예전(禮典) 가운데서 자세히 설명하였다. 만약 의식에 있어 성실하지 못한 자가 있을 경우에는 헌전(憲典)으로써 규찰한다.

 종묘 사직을 신축하고 수리하는 그 제도에 관하여는 또 여기에서 설명한다. 종묘 사직만이 아니라, 풍(風)ㆍ운(雲)ㆍ뇌(雷)ㆍ우(雨)에 관한 제사와 성황(城隍)ㆍ악독(岳瀆)에 관한 제사도 각각 그 처소가 있어서 완전하게 되어 있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 신령의 아름다운 가호에 보답하기 위한 뜻이 과연 어떠한가?”



신령의 아름다운 가호에 보답하기 위한 종묘에는 과연 신령스러운 이름이 있으니, 바로 종묘의 대문인 창엽문이다. 무학대사와 함께 정도전이 지었다는 창엽문이라는 이름에 조선의 역사가 예언되어 있다.

<그림 6 > 종묘의 대문, 창엽문(蒼葉門)
( 종묘의 창엽문에는 현판이 원래 붙어있지 않다.
Photo Copyright@Dr. Sirh., 종묘 창엽문, 2002-03-02, 저자 직접 촬영, Sony F 707 )

   먼저 예언을 보기 위해서는 해자법(解字法)을 배워야 한다. 한자는 표의문자(表意文字)이므로 해자에 의해 그 뜻을 살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난초 난(蘭)자를 풀어보면 풀 (艸)과 문(門)과 동(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난초가 동쪽 문가에 놓고서 키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 무소유 」에서법정은 귀한 난초를 남쪽 툇마루에 두고 와서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난초가 강한 햇볕을 많이 보면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난초의 꽃을 보고 싱싱한 잎을 보려면 햇볕이 하루에 2시간 정도밖에 들지 않는 동쪽 문에 두고서 키워야 한다는 이유에서이다. 바로 난(蘭)이라는 글자에 난초에 대한 자연의 섭리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종묘의 해자해 보면 조선의 미래를 볼 수 있다. 창(蒼)자를 해자하면 艸와 八, 그리고 君이 된다. 艸자는 다시 十과 十으로 나누어지므로 20이 되며, 이것은 20과 8, 즉, 완성된 뜻이 스물 여덟 임금(二十八君)이 되는 것이다.

   엽(葉)자를 해자해 보면 역시 艸와 世, 그리고 木이 된다. 즉, 20세대(世代)와 나무가 되는데, 오행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木자가 된다. 그러므로 창엽의 의미는 28명의 임금이 20세에 걸쳐 이어지는 조선(木)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신봉승이 책에서 엽(葉)을 스물여덟세대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김재준 교수의 해석을 따른다. 김재준 교수의 의견은 www.artlifeshop.com에서 인용하였다.)

   이것을 조선의 역사에 대비해보자. ‘태정태세문단세...’ 라고 외우듯이 조선은 태조부터 27대 순종까지 이어지는데, 고종 34년에 고종과 순비(淳妃) 엄씨 사이에서 태어난 영친왕이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다. 순종에게 자손이 없자, 고종은 동생인 영친왕을 세자로 봉한 것이다. 그리고 세자빈 이방자 여사와의 사이에 태어난 외아들 이구에 이르러 절손(絶孫)되었다. 그러므로 영친왕까지의 임금이 바로 스물 여덟 임금(二十八君)이 되는 것이다.

      蒼 = 艸 + 八+ 君
      葉 = 艸 + 世 +木

   다음으로 20세(世)란 의미를 보면, 후손에 ‘대물림’한다는 표현에서는, 자신의 아래 세대에 전해주는 것을 뜻하게 된다. 즉, 같은 세대에서 이어지면, 대물림 수가 늘어나지 않는 것이니, 예를 들어 순종과 영친왕은 고종의 다음 세대(世)이니 두 사람이지만 한 세(世)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태조의 아들 정종과 태조, 세종의 아들 문종과 세조, 성종의 아들 연산군과 중종, 숙종의 아들 경종과 영조 등도 이인일세(二人一世)가 된다.

   이렇게 세대를 정의하고, 조선조 군왕 스물 여덟 분을 따져보면 20세(世)에 달하게 된다. 이것의 엽자에 나오는 20 세대(世代)의 의미이다. 창엽문이라는 이름을 짓던 조선의 초기에 정도전은 이미 조선의 왕조가 28분의 임금이 20세에 걸쳐 600년 동안 이어질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도전이었다.

3. 국호 조선은 어떤 의미인가?

   그렇다면 조선이라는 국호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우선 창엽문처럼 해자를 해보면 조선(朝鮮)은, ‘십일십월물고기양’이 된다. 어떤 의미도 찾기 힘들다. 근정전처럼 뜻으로 풀어보면 ‘아침에 신선한 나라’라는 뜻, 이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 역시 경복궁처럼 옛 문헌에 나오는 글귀일까? 그러고 보면 단군조선, 고조선이 존재한다.

   조선경국전 상편의 국호(國號)에서 정도전은 명나라의 천자(天子, 명 태조, 明太祖)가 "오직 조선이란 칭호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유래가 구원하다.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하늘을 본받아 백성을 다스리면, 후사(後嗣) 길이 창성하리라."고 인용하고 있다.
(정도전의 대부분의 사상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하지만, 국호에 있어서는 기자조선을 인정하는 등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조선 경국전 상편의 국호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자료: http://myhome.netsgo.com/snewworld/hisjdj040201-1.htm에서 인용
국 호 國號
해동(海東)은 그 국호가 일정하지 않았다. 조선(朝鮮)이라고 일컬은 이가 셋이 있었으니, 단군(檀君)ㆍ기자(箕子)ㆍ위만(衛滿)이 바로 그들이다.
박씨(朴氏)ㆍ석씨(昔氏)ㆍ김씨(金氏)가 서로 이어 신라(新羅)라고 일컬었으며, 온조(溫祚)는 앞서 백제(百濟)라고 일컫고, 견훤(甄萱)은 뒤에 후백제(後百濟)라고 일컬었다. 또 고 주몽(高朱蒙)은 고구려(高句麗)라고 일컫고, 궁예(弓裔)는 후고구려(後高句麗)라고 일컬었으며, 왕씨(王氏)는 궁예를 대신하여 고려(高麗)라는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들은 모두 한 지역을 몰래 차지하여 중국의 명령을 받지 않고서 스스로 명호를 세우고 서로를 침탈하였으니 비록 호칭한 것이 있다손치더라도 무슨 취할 게 있겠는가? 단 기자만은 주 무왕(周武王)의 명령을 받아 조선후(朝鮮候)에 봉해졌다.
지금 천자(天子 명 태조(明太祖)를 가리킴.)가,
"오직 조선이란 칭호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유래가 구원하다.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하늘을 체받아 백성을 다스리면, 후손이 길이 창성하리라."
고 명하였는데, 아마 주 무왕이 기자에게 명하던 것으로 전하에게 명한 것이리니, 이름이 이미 바르고 말이 이미 순조롭게 된 것이다.
기자는 무왕에게 홍범(洪範)을 설명하고 홍범의 뜻을 부연하여 8조(條)의 교(敎)를 지어서 국중에 실시하니, 정치와 교화가 성하게 행해지고 풍속이 지극히 아름다웠다. 그러므로 조선이란 이름이 천하 후세에 이처럼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제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기자의 선정(善政) 또한 당연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아 ! 명 천자의 덕도 주 무왕에게 부끄러울 게 없거니와, 전하의 덕 또한 어찌 기자에게 부끄러울 게 있겠는가? 장차 홍범의 학과 8조의 교가 금일에 다시 시행되는 것을 보게 되리라. 공자가,
"나는 동주(東周)를 만들겠다."
라고 하였으니, 공자가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하지만 이 역시 조선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구원하다고만 할뿐 조선의 실제 뜻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의 뜻은 진정 무엇일까? 조선(朝鮮)의 뜻풀이대로 ‘ 아침에 신선한 나라 ’라는 뜻일까? 아니다. 조선이라는 국호에 대하여 단채 신채호 선생은 「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 」
(단재 신채호 선생이 1924년 10월 13일부터 1925년 3월 16일까지 《 동아일보 》에 연재한 글을 1929년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논문 6편을 묶어 「 조선사연구초 」라는 제목으로 간행한 것이다.)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신채호 지음, 「 조선사 연구(草) 」, 범우사, 1997)

 전삼한의 역사를 말하려면 먼저 ‘ 조선 ’의 뜻과 ‘ 삼조선 ’의 내력을 밝힐 필요가 있다. 조선에 대하여 김학봉 (金鶴峯: 성일)의 ‘ 아침 해가 선명하다 ’, 「 여지승람 」의 ‘ 동쪽에서 해가 돋아 나온다 ‘, 안순암의 ’ 선비산 (鮮卑山)의 동쪽이다 ’ 등 갖가지 해석이 있다. 그러나 이는 곧 중경(中京)의 뜻인 ‘ 가우리 ’로 이름한 고려(高麗)를 ‘ 산고수려 (山高水麗) ’의 뜻으로 해석한 것과 같은, 후세 문사가 억지로 끌어다 붙임이며 본뜻이 아니다. 그리고 「 삼국지 」 중 고구려의 수도는 현 집안현(輯安縣)이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글은

“ 조선의 의미에 대해 [관자]에 8천리의 발조선 (發朝鮮)’ ,  ‘ 발조선은 조공하지 않는다 ’, ‘ 발조선의 문신(文身) ’ 등의 말이 있고, 사기와 대대례(大戴禮)에 발숙신(發肅愼)이 있다. 발숙신이 곧 발조선이라, 조선과 숙신의 한가지 명사가 둘로 번역됨이 명백한데, 건륭제의 만주원류고에 숙신의 본음을 주신(珠申)이라 하고 관할경계라 하였으니, 그러면 조선의 음도 ‘ 주신 ’이고 관할경계란 뜻이 됨이 분명하다. 즉, 숙신, 직신(稷愼), 주신(州愼) 등은 다 고대 중국 사람이 조선(朝鮮)을 번역하여 전한 것이다.”


   신채호는 이렇게 조선을 주신의 음차로 풀어쓰고, 관할경계란 뜻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신채호의 글들을 보면서 조금 더 이야기를 진행해보자. 시대는 다시 고려로 거슬러 올라간다.

1) 서희의 강동 6주와 국호

   서희의 강동 6주가 어디인가? 고려 태조 왕건의 시대 즉, 건국 초기 고려의 영토는 청천강까지로 제한되었고, 이북의 압록강 유역과 지금의 몽골과 만주지방에는 거란족과 여진족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916년에 거란족이 여러 부족을 통일하여 요(遼) 나라를 건국하고 발해를 멸망시키자, 고려 태조 왕건은 북진정책을 추진하고 발해 유민을 포섭하였고, 뒤이은 왕들이 친송정책을 펼치면서 서로 적대관계가 되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요의 소손녕(蕭遜寧)이 993년 (성종 12년) 10월에 고려를 침략하게 된다.

   1차 거란 침입에서 고려는 거란이 초기에 우위를 보이자 항복할 것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계속 항전을 주장하던 서희가 소손녕을 만나기로 하였다. 협상 테이블에서 소손녕은 고려를 침략한 이유로 첫째, 고려가 신라 땅에서 일어났는데 자기 땅인 고구려를 침식하고 있으며 둘째, 이웃인 거란을 버리고 송나라와 교류하고 있다는 점을 불만으로 이야기하였다.

   이에 대해 서희는 첫째,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이름까지 고려라고 했으므로 요의 동경(東京) 역시 고려의 땅이며, 둘째, 고려는 건국 이념인 남방통일과 고구려 구토(舊土)의 회복’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과, 셋째, 압록강 유역도 고려 땅인데 고려가 요와 교류하고자 해도 여진이 있어 불가능하므로 이 지역을 회복하여 성을 쌓고 도로를 확보하면 교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응하면서, 강경히 철군을 요청하였다.

   협상의 결과 거란측은 고려왕의 입조(入朝)와 거란 연호의 사용을 조건으로 압록강 동쪽 여진의 거주지역 280리를 고려가 점유한다는 화약을 맺고 군대를 철수하였다. 이로써 요는 고려에 대해 형식적이나마 사대의 예를 받아 침략의 목적을 달성했으며, 고려는 여진족의 거주지역을 획득하여 북진정책의 일환으로서 실리를 얻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고려는 994년 압록강 동쪽인 강동(江東)의 여진부락을 소탕하고, 이곳을 통치하기 위하여 장흥ㆍ귀화ㆍ곽주ㆍ구주ㆍ안의ㆍ흥화ㆍ선주 등에 성보를 쌓고 6주를 설치하였다. 그 결과 고려는 후삼국 이후 처음으로 압록강 연안에 진출하게 되고 군사ㆍ교통상의 요지를 확보함으로써 압록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선 확장의 길을 터놓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강동 6주이며, 서희의 협상이었다.
(그리고 2차 침략에서 강감찬과 귀주대첩이 등장한다. 막상 강동 6주(州)가 군사적 거점이 되자 거란은 고려가 입조를 하지 않는다는 구실로 1010년 (현종 1년)에 제2차 침략을, 1018년에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제3차 침략을 감행해 왔다. 이때 등장하는 두 번째 인물이 강감찬이다.거란군은 귀주에서 강감찬의 공격으로 대패하여 10만 대군 가운데 살아남은 자가 수천 명에 불과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귀주대첩이다. 이로써 전쟁은 끝나고 1019년 양국 사이에 사신이 왕래하면서 국교가 회복되었다.)


2) 고구려, 고려와 조선의 국호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서희가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이름까지 고려라고 했으므로 요의 동경(東京) 역시 고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것을 소손녕이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신채호 선생은 고려 또한 산수고려(山高水麗)의 뜻이 아니라, 중경(中京)의 뜻인 가우리를 이름한 것이 고려(高麗)의 국호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고구려와 고려라는 국호는 둘다 중경(中京), 가우리, 가운데라는 뜻이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조선의 의미를 음차, 이두문자를 통해 다시 한번 보면 재미있는 음이 발견된다. 신채호는 ‘숙신(肅愼), 직신(稷愼), 주신(州愼, 珠申) 등은 다 고대 중국 사람이 조선(朝鮮)을 번역하여 전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숙신(肅愼)도 같은 음이라는 것인데, 현재 중국인들은 '쑤우신'으로 발음한다. 이와 비슷하게 조선(朝鮮)의 원래 우리발음은 '쥬신'이라는 주장이 있다. (대쥬신제국사, 김산호, 동아출판사)

   조금 논리적인 비약일 수도 있고, 문헌에 근거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숙신, 주신, 쥬신, 직신, 조선의 음과 중심(中心)의 음을 비교해보자. 대부분 ‘ㅜ’, ‘ㅣ'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거나, ’ㅈ', 'ㅅ‘ 자음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그리고 고구려와 고려의 이름이 ’가우리‘, 가운데에서 비롯됐음을 생각해 본다면, 조선도 바로 관할 경계의 중심이라는 뜻이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고조선에서부터, 고구려,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뜻을 가진 국호를 사용한 것이다. 바로 가우리, 중심이라는 뜻의 국호이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 나라, 코리아이다.

4 . 세계의 중심 - 코리아


    이제 다시 한번 세계 지도를 바라 보자. 우리 나라는 전세계의 바로 중심에 위치한다. 먼저 작게 보면 한반도가 지정학적 관점에서 중국의 대륙문화와 일본의 해양문화를 매개 조정하는 반도의 지리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새천년 ‘세계화’의 국제환경 속에서 대륙 국가인 중국과 해양국가인 일본과의 관계는 그 균형ㆍ중심 역할을 수행할 한국의 반도성 회복 및 지리문화적 (Geo-culture)인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 이어령, "새천년 사업의 내용과 추진전략 - 새천년사업 설명서“, 새천년준비위원회, 1999. )
조금 크게 보면, 한국을 중심으로 중국, 일본, 러시아, 동남아가 동서남북을 이루고 있다. 또 멀리서 북미와 EU의 두 축이 한국을 중심에 두고 움직이고 있다. 바로 적게 보나 크게 보나 전체 바퀴살의 중심인 허브의 역할을 부여받은 곳이 바로 한국이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1,200킬로미터의 동북아시아 핵심지역은 21세기의 중심지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무려 7억의 인구, 국내 총생산의 합계가 5조 달러가 넘는 시장이며, 그 중심에 한반도가 있는 것이다.
( 김재철 지음, 「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 - 가슴이 확트이는 파워코리아 대전략 」, 김영사, 2000. )

또한 도쿄, 베이징, 상하이, 블라디보스톡, 서울 등 동북 아시아의 5대 성장거점을 놓고 볼 때 한가운데 자리한 곳이 서울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한국, 대륙으로는 중국, 러시아, 유럽 등으로 연결되고, 바다로는 태평양, 인도양으로 무한정 뻗을 수 있는 지경학적 (Geo-Economical) 여건을 갖추고 있는 한반도는 어떤 중심으로 성장하여야 하는가?

1) 물류의 중심 - 한반도

   그 첫 단계는 세계의 물류의 중심으로 성장하여야 한다.
( 물류의 중심으로 성장하여야 한다는 논거는 김재철 무역협회 회장의 주장을 원용하였다. 김재철 지음, 「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 - 가슴이 확트이는 파워코리아 대전략 」, 김영사, 2000 참조. )
먼저 전세계 해양물류의 대부분은 한국을 중심으로 영국에서 시작하여 수에즈 운하, 인도양, 동지나해, 남해안, 태평양을 거쳐 미국 쪽으로 흘러가는 태극 형태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동남아시아와 북미 대륙을 왕래하는 대형 선박의 항로로는 일본의 남쪽 바다를 거치는 것보다 우리나라의 남해안을 거치는 길이 3시간 정도나 빠르다. 바로 한반도의 남해안이 해양물류의 요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남북한 철도 복구가 이루어지면 해상 물류와 육상 물류의 연결점이 한반도에서 만들어진다. 시베리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대륙횡단 철도 (TSR, Trans Siberia Railway), 중국 횡단철도 (TCR, Trans China Railway) 등과 남북한관통 철도 (TKR, Trans Korea Railway)가 다시 연결되는 시점부터 한반도는 유럽-아시아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silk road)의 사발점이자 종착점이 된다. 또한 해상과 육상 물류의 환승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경의선 복구에서 휴전선 근처의 25km를 다시 연결한다고 가정하면 물류의 개선 효과는 엄청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서울의 화물이 경의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을 통해 프랑스 파리까지 간다고 전제할 경우 해상운송에 비해 거리가 7,290km 단축된다. 또한 운송기간은 12일에서 14일 정도 짧아지고, 운송비용도 3분의 2로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먼저 우리는 한반도를 물류의 중심으로 개발해서 해상물류와 육상물류, 그리고 인천공항의 항공물류가 이어지는 교두보이자 대륙에서 해양으로 나가는 시발점을 만들어 가야한다.

2) 정보와 거래의 중심 - 한반도

   물류 중심지로서의 코리아가 만들어지면 두 번째 단계는 정보의 중심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현재 물류망, 즉 철도망이나 도로망을 단순히 수송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부족하다. 철도망과 도로망을 따라 쉽게 광섬유 등을 설치한다면 유라시아 대륙의 정보통신망의 일단이 한반도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한 물류와 사람이 오고 가는 곳에서는 당연히 정보가 오고 가게 되고, 이러한 단계에서 우리는 ‘정보의 중심’으로서의 한반도를 형성시켜야 한다. 여기서 주요한 정보로서는 상품에 대한 정보, 서비스에 대한 정보, 전체 시장에 대한 정보를 축적해나가야 한다. 국가적인, 그리고 기업 전반적인 ‘정보의 관리’가 지금부터 필요한 것이다.

   정보의 관리가 이루어진 다음 단계에 우리는 ‘거래의 중심’으로서의 한반도를 만나게 된다. 육상과 해상 물류망을 가지고 있고, 시장, 수요, 제품, 서비스 정보를 가지면 자연히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이루어지는 상대국으로부터 직접 수출입을 하는 직접 교역이 아니라, 국가간의 거래를 주관하는 삼국 무역, 다자간 무역을 발전시켜야 한다. 관세, 비관세 장벽이 WTO 등의 협정에 따라 점차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한국시장이 개방되었다라는 인식을 하는 것보다는 전 세계의 무역장벽이 동시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글로벌 소싱과 글로벌 마케팅의 능력을 배양해 나가야 한다.

   즉, 두 국가간에 이루어지는 거래인 국제화(inter-national)단계를 넘어서서 진정한 세계화 (global)한 마케팅을 이루어야 한다. 글로브(globe)는 하나의 지구를 의미하고 단일 경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무역과 물류의 장애가 없는 것을 세계화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화가 진행되는 것을 이용하여 가장 싼 곳에서 물건을 구입, 또는 제조하여, 가장 비싼 곳에서 팔 수 있는 세계 거래의 중심으로 한반도를 성장시켜야 하는 것이다.

3) 금융의 중심 - 한반도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단계가 ‘금융의 중심지’ 한반도이다. 챈들러는 자본주의의 발전단계를 가족 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상업자본주의, 마지막 단계로 금융 자본주의로 설명하고 있다. 자본주의 발달의 최대치가 금융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전세계에서는 1998년 기준으로 1년간 약 5조 6,000억달러의 무역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당시 하루 자본 거래액은 1조 9,700억 달러였다. 즉, 무역의 결제를 위해 발달한 외환시장에서 단 3일간의 자본 거래액만으로도 1년간의 무역거래액을 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바로 과거 실물 경제를 지원하던 금융이 오히려 실물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 금융산업의 현황 및 전자 금융 발전에 관한 논거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주장을 원용하였다. 한국경제신문사, 삼성경제연구소 편, 「 21세기 성장엔진을 찾아라 」, 삼성경제연구소, 2000 참조. )

   특히 초국적 펀드들의 영향이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더욱 더 강해지는 상황에서 금융이 강하지 못한 나라는 언제나 외환위기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금융은 21세기를 주도할 가장 중요한 산업의 하나임과 동시에 국가적 생존차원에서도 필요한 산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금융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는가?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에서는 대안으로 ‘전자금융’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금융에 정보기술 (IT)을 결합하여 디지털 금융공학, 전자금융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전세계 금융자본의 60% 가량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는 나사(NASA) 등에서 수학을 연구하던 로켓사이언티스트(Rocket Scientist) 들이 최첨단 금융 공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정보와 거래의 중심으로서의 한반도가 금융의 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금융의 최첨단 전산 인프라의 투자, 금융 공학 연구에의 투자를 통한 신금융 기법 개발, 전자 금융의 표준화, 보안성 확보, 그리고 세계 거래 중심지로서의 역할 수행을 통한 외환거래(Forex: Foreign Exchange Market)의 절대치 확보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한반도가 물류의 중심에서 정보의 중심, 거래의 중심으로 발전한후, 마지막 단계인 금융의 중심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세계의 거대한 바퀴살을 돌리는 작지만 강한 축, 허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림 8 > 중심으로서의 한반도 발전단계

5. 세계의 중심 - 자의누리

   우리가 세상의 중심에 있다. 한반도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든다.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저자가 작은 힘이나마 노력하고 있는 것이 바로 「 자의누리 」라는 사업체이다. 1997년 8월 15일에 한국을 경영, 정보기술, 문화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이 자의누리 (아래에서 자의누리로 표기)이다. 자의누리는 ‘ 중심 세계 ’란 뜻의 순 우리말이다. 여기서 ‘ 자의 ’는 한복판, 중심을 의미하고, ‘ 누리 ’는 세계, 세상의 의미로서, 영어로 표현하면 ‘ Center World ’, www.centerworld.com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많은 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은 경영의 비전과 철학적 깊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결과 회사의 이름을 자의누리로 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이 21세기에 정보, 지식, 기술, 문화, 경제, 정치 등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의 중추신경 역할을 하여, 한반도가 세계 역사의 구심점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발원한 것이다. 또한 한민족이 중심이 되는 세계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로고 역시 그러한 뜻의 표상이다. 첫 번재 로고가 1997년부터 사용한 첫 로고로서, 가운데의 그림은 우리 민족의 고대 상형문자로서 태양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태양을 중심으로 음양의 두 태극이 조화를 이루며, 세계를 형성하고, 태양을 중심으로 융합되어 우주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 로고에는 양과 음의 조화로운 운용을 바탕으로 중앙의 비전과 목표, 희망을 향해 달려나가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마지막 로고가 2000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에는 세계로 도약하기 위해 영문으로 자의누리, Centerworld를 직접 표기하였다.

   세계의 중심이 되려면 무엇을 하여야 할까? 저자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업 영역을 경영, 정보기술, 문화로 잡았다. 먼저 경영이다. 저자는 현대의 산업, 정보 사회에서 국가의 경쟁력은 기업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부정하고 싶다면 기업이 없는 현대사회와 한국을 가정해보자. 기업은 국가 경쟁력의 근원이 된다. 그리고 그 기업의 경쟁력은 바로 경영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의누리는 기업과 경영에 대한 통합정보와 경영컨설팅을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97년 8월 15일 자의누리 창립사에서, http://www.centerworld.com/info/cwcol/c7083.htm에서 인용)

   두 번째는 세상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 정보사회로 발전해 나간다고 이야기할 때, 정보사회를 이루는 기본적인 인프라가 바로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첨단의 정보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기업과 조직의 경쟁력을 가지게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자의누리에서는 인터넷 기술과 기업 ERP 기술 등의 연구개발을 통해 첨단 한국을 준비하고 있다.

    세 번째는 문화이다. 세상은 이미 하드웨어 시대에서 소프트웨어 시대를 거쳐, 컨텐츠 웨어, 지식 경제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컨텐츠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것이 바로 문화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아름다운 문화국가 건설' 사상을 통해 문화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치 아니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자의누리 칼럼 http://www.centerworld.com/info/cwcol/c7104.htm에서 인용)


   높은 문화의 힘은 윈윈 전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지식과 문화는 한없이 나누어 주어도 자신의 것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의누리는 문학, 미술 등의 문화와 기업 문화 등에 관한 컨텐츠 개발, 디지털화 지원과 연구를 통해 문화 경쟁력 제고에 도움을 주려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 정보기술, 문화, 이 세 분야의 통합이라고 생각한다. 경영은 정보기술을 만나면서 그 효율성과 효과성의 극치에 달할 수 있다. 문화는 정보기술을 만나면서 디지털화를 통해 문화 산출과 유통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 경영과 문화는 만나면서 서로 상승작용을 통해 지식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퓨전(Fusion)의 시대(퓨전(Fusion)의 해자를 이렇게도 할 수 있다. 퓨전은 Future 즉, 미래와 Vision 비전이 된다. 미래의 비전은 바로 융합에서 온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이 세분야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것이 자의누리가 추구하는 경쟁력이다. 자의누리는 세계의 중심에서 세계의 경영, 정보기술, 문화의 융합을 추구한다.

   그것이 자의누리이다. 그것이 세계의 중심, 코리아의 모습이다. 코리아여 영원하라. 코리아여 세계의 빛이 되어라.

동방의 등불

-타고르-
( 이 시는 191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인도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타고르 (1861~1941)가 1929년 일본 방문시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 방문을 청하자 그에 응하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여 기고한 시로서 세계의 중심, 미래의 빛으로서의 한반도를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는 두려움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 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6. 참고 자료: 선학(先學)들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한국경제신문사, 삼성경제연구소 편, [21세기 성장엔진을 찾아라], 삼성경제연구소, 2000 참조.
   신봉승, [신봉승의 조선사 나들이], 답게, 1996
   홍성욱 역해, [시경], 고려원, 1997
   이어령, "새천년 사업의 내용과 추진전략 - 새천년사업 설명서“, 새천년준비위원회, 1999.
   김재철 지음,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
    - 가슴이 확트이는 파워코리아 대전략], 김영사, 2000.
   신채호 지음, [조선사 연구(草)], 범우사, 1997
   http://chungbuk.ms.kr/social/2jang/kenjung.htm
   http://members.tripod.lycos.co.kr/kus99/hanja/1-5.htm
   http://myhome.netsgo.com/snewworld/hisjdj040201-1.htm
   http://myhome.netsgo.com/snewworld/hisjdj040201-2.htm#종묘宗廟
   http://user.chollian.net/~polk/k-dragon.html
   http://www.artlifeshop.com
   http://www.centerworld.com/info/cwcol/c7083.htm
   http://www.centerworld.com/info/cwcol/c7104.htm
   http://www.dongduk.ac.kr/~khs1376/Kbg/Kbg_01.htm
   http://www.k-palace.pe.kr/kyungbokkung/junkak/oj_kun.html
   http://anitya.buddhism.org/world/world2.html
   http://myhome.netsgo.com/snewworld/hisjdj040201.htm

서진영 (자의누리 대표, 경영학 박사)
cw@centerworld.com

자의누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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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BS 역사스페셜 조기 종영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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