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드라마

왕과 나

밤하늘을 날아서 2008. 4. 5. 17:04

 

연산군이 복수를 하고 나서도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에 오열하는 장면을 보고

폐비 윤씨의 사사 이후로 보게 된 '왕과 나'이지만 이때부터 빠져들게 되었다. 

드라마 자체는 연출과 대본이 감정선을 이끌어가는데 미흡했지만

'왕과 나'의 연산군은 그 동안 그려왔던 폭군 이미지라기 보다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어서 그런가

이 장면 이후로 그냥 연산군에 빠져서 보았던 것 같다.

 

'왕과 비'도 재미있게 봤지만 그 때의 연산은 그냥 폭군 같았는데 

'왕과 나'의 연산은 눈물이 시리도록 안타깝게 연민이 간다.

그 때도 지금도 어머니의 원한으로 복수하는 건 똑같은데

배우에 따라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도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왕과 나'에서는 아역 배우가 워낙 귀엽게 연기한 탓도 있겠지만...

 

왕과 비의  연산은 카리스마 있는 폭군으로 분노 폭발이 백미였는데

왕과 나의 연산은 어머니를 미치도록 그리워 하는 면과 그로 인해

자기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파멸로 치닫는 과정이 백미인 것 같다.

 

그로 인해 연산이 유배지에서 처선과의 어린 시절 약속을 떠올리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처량함이 극에 달해 급기야 울고야 말았다. 

아마도 사극에서 본 최고의 엔딩 중 하나로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

 

정태우가 사극 연기를 잘 하긴 했지만 태조 왕건을 끝으로

연기에서 별 다른 매력을 못 보여주더니 (심지어는 사극에서 조차도;;)

작년 대조영을 시작으로 다시 연기가 빛을 발하는 것 같다.

태조 왕건이나 왕과 비 때 이미지가 워낙 인상 깊기도 했지만

한동안 연기를 밋밋하게 하는 느낌도 받았었는데 말이다.

슬픈 연기야 단종 시절부터 잘했고, 눈빛 연기도 최응 시절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근래에는 한 단계 더 도약을 한 것 같다.

 

배역의 세세한 설정이나 연기의 완급 조절에서는 다소 부족하지만

미묘한 감정 변화나 감성 전달에서는 거의 최고인 것 같다.

더욱 연기의 꽃을 피워가길 기대해 봐도 되려나...?